가제트 글방

가을에 불러 보는 노래 1

밴쿠버가제트 2009. 10. 24. 02:22
가을은 뭔가 좀 어색한 계절이다.
여름의 길고 뜨거운 햇빛에 들떠있다가 발 밑에서 펄럭이는 노란 나뭇잎을 보고 '어! 가을이네'라고 느낄 때면 가슴은 이미 선선해져 있고,추석때 팽팽했던 보름달이 처지기 시작하면 '이 가을을 어떻게 지내나' 보다 ' 올 겨울은 어떻게 보내나'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싸리눈처럼 흩날리기 시작한다.
더구나 캘거리처럼 기나긴 겨울과 짧은 가을을 가지고 있는 북쪽 동네에 살다 보면 찬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당장 여름 옷들을 접어 장롱 속에 넣어 놓고 옷장 안에 처벅아 놓았던 겨울 옷을 꺼내면서 옷걸이의 후미진 구석쯤에 어색하게 걸려있는 춘추용 외투를 슬쩍 한 번 만져보고는 아예 맨 구석으로 밀어 넣는다.
'내 년에 다시 보자'라는 확실치도 않은 어색어색한 격려 한 방 먹이면서....
 
낙엽들이 둘둘 말려서 이리 저리 쓸려 다니는 모습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처량해 보이고,
Mall 주차장 한 가운데를 굴러 다니는 전단지 몇 장은 정말 어색하게 어울려 있는데.....
때 이른 월동 준비는 게으른 나의 성품이 허용치 않고,타고난 베짱이 기질이 괜히 구석에 박혀 있는 기타를 만지작 거리게 한다.
가을 바람에 보조 맞추듯 께작거리며 흘러 내리는 가느다란 콧물을 슬쩍 닦은 지저분한 손으로....
 
가을에 불러 보고 싶은 노래...
뭐가 있을까?
퍼득 떠오르는게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이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작사,작곡가인 김현성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실려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 <이등병의 편지>도 만든 가수이자 시인이다.
그는 노래가 '3분짜리 영화'라는 걸 주장하는 작사가인만큼 이미지를 압축하는 표현력이 뛰어나다.
윤도현은 그런 김현성의 노래에 가장 잘 맞는 가창력과 표정으로 가을 우체국을 부른다.
가버린 사랑을 포함해서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가버리지만,
우체국 앞에까지 와서 날 저물도록 기다리면서 홀로 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는, 사랑을 기다리는 한 남자.
그 남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윤도현!
가끔 노래방 기계 반주를 통해 이 노래를 부를 때 항상 고음에서(소나기와 눈보라-역시 모진 시련이다) 켁켁거려서 따라 부르기 어려운 노래 중의 하나이지만 어쩌랴 가을에 이 노래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나 또한 날 저물도록 홀로 설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왕년의 우체국 남자(?)였던걸....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80년대로 가보면....
8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중에서 이문세를 빼놓고 말한다면 할 말이 별로 없다.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얼룩진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가슴을 그들의 언어로 따뜻하게 위로한 이문세와 고(故)이영훈을 이 시간에 잠시 이야기하는 것도 추억과 더불어 가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이 글의 주제가 가을에 대한 노래이기에 이문세와 이영훈이 같이 작업한 그들의 탁월한 앨범인 <이문세 3,4,5집>(난 다 샀다)을 다 이야기 할 수 없는것이 많이 아쉽지만....
 
그의 가을과 관련된 노래 중에 생각나는 것은 '가을이 오면<이문세 4집(1987)>'과 '시를 위한 시<이문세 5집(1988)>'인데 '가을이 오면'은 그 가사 중에 '가을'을 빼고 '봄'을 바꿔 넣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가을에 대한 노래가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감정을 가을에 끼워 맞춘 듯한 노래로 생각되어진다.
물론 그렇다고 이 노래가 폄하되는건 아니다. 단지 가을을 노래한 노래로 이야기하기엔 다른 노래가 더 좋지 않을까 라는 거다.
그러나 '시를 위한 시'는 이문세 노래 인생의 동반자였던 고(故) 이영훈씨의 탁월한 솜씨가 묻어나는 작품인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노랫말이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왜냐하면 이 노래의 특이한 점이 내가 죽걸랑 어쩌구 저쩌구 해달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와의 사별에 대해 남아 있는 자의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는 김민기의 '친구',그룹 사운드 Fevers의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등 몇 곡이 떠오르지만 그 반대를 노래한 것은 내가 아는 한 이 노래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꽃이 떨어지고,별이 가을로 사라지고, 내가 바람이 되어도 라는건 내가 죽거든이란 뜻이고 그래도 언제까지나 그대를 생각한다는, 이를테면 유언과도 같은 내용인데 그게 참,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시를 위한 시'는 이젠 남아 있는 당신이 시가 되어, 떠난 시(나)를 위해 시(노래)를 불러 달라는 것이다.
노을진 구름과 언덕으로 나를 데려가 주고 그 위에서 별을 보고 바람을 느끼면서....
 
최고의 가창력은 아닐지라도 고음 처리가 자연스러우며, 마지막 음절을 목구멍으로 말아 먹으면서 약간 꺽어 버리는 이문세의 독특한 창법에 딱 들어 맞는 곡인데 근래에 아이돌 스타들이 리메이크한 노래들도 나와 있으나 내가 보기엔 문세 오빠(?)를 따라 오기엔 영혼의 울림쪽에서 조금 모자른듯....
이 노래는 내용처럼 떠나는 자와 남아 있는 자 간의 영혼의 끌림같은 걸 표현해야 하는데...
스테디 싱어-이런 용어가 있나?,아니면 장수하는 가수-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걸랑.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져도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의 꽃잎도 띄울께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께
이 생명 이제 저물어요
언제까지 그대를 생각해요
노을진 구름과 언덕으로
나를 데려가줘요
 
오늘 한 번 불러보자.
가을로 사라진 어느 별을 생각하며....
 
 
사실 지금까지 발표된 수 많은 가요 중에서 가을에 불러보고 싶은 노래를 찾는다는 건 좀 무모하다 싶기도하며 ,가을이라는 하나의 계절에 맞춘 노래를 둘러 본다는 자체가 별 의미없는 작업일 수도 있다.
그러나 타국에서 맞는 가을, 그것도 귀성전쟁이니 뭐니 하는 그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가지게 되는 어쩔 수 없는 향수를 이런 식으로 달래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된다.
 
다음 편 부터는 좀 더 본격적으로 그러나 더 다양하게 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칠칠맞게 그 이야기를 좀 흘리면...
 
웬만한 가수들의 가을 노래가 되어 버린 최양숙의 <가을 편지>,산울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송창식의 <철 지난 바닷가>,김의철의 <마지막 교정>,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이연실의 <찔레꽃>,이용의 <잊혀진 계절>, 김상배 작사,작곡 송창식 노래<날이 갈수록>등 노랫말와 그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