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친구들로부터 바보같다라는 얘기를 듣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좀 더 지나고 나니 그 얘기에 대해 별로 거부감이 없이 '어, 그래. 나 바보야' 라고 대꾸할 줄도 알았다.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 단어가 내 마음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바보같은 삶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사는 것도 바보같은 삶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 좀 더 생각해보니 예수도 바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40여년을 크리스천으로 살아 오면서 이제야 예수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인가?
그냥 바보가 아니라 진짜 바보,참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 '짝사랑'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 주기 위해 바보가 되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아도,자신을 배반해도, 오히려 자신을 죽여도 그 죽인 자들까지 사랑하는 '짝사랑'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해 '바보'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 삶 또한 고난의 연속이다.
그것도 알고 받는 고난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들의 구원이요, 우리의 되찾은 사랑이다.
새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난 그러한 '바보'들을 이 시대,아니 내가 살아 온 시대를 통해 찾고 싶었다.
이민자들의 팍팍한 삶에 필요한 짝사랑의 이야기,바보들의 이야기,사막의 물병같은 이야기....
'바보들의 행진' 연재의 첫번째 글 서두에서 이 글은 이민자들의 팍팍한 삶에 필요한 사막에서의 물병을 만나기 위한 이야기라고 설명 한 이유가 이것이다.
그리고 왜 영화여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도 역시 설명하였다.
당연하지만 내가 소개한 몇 편의 영화에 대해거서는 다른 의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의 주제를 풀기 위해 영화를 빌려 오면서 스토리와 감동적인 장면을 얘기했을 뿐 그 영화에 대한 평을 나누자고 한 것이 아니다.
사실 나도 영화광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영화를 더 많이 소개하고 싶고 더 멋진 장면에 대한 내 의견도 달고 싶지만 이 쯤에서 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짝사랑'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 얘기를 지나간 영화를 통해서 나누어 보고 싶은 것이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 '병태'가 '영자'에게 보여 준 짝사랑 그리고 회복.
'고래 사냥'의 '병태','춘자' 그리고 안성기가 함께 보여 주는 사랑을 찾아가는 고단한 삶 그러나 행복.
'내 마음의 풍금'에서 같이 콩닥거리게 만드는 성숙한 소녀 '홍연'의 짝사랑과 행복한 결말.
'클래식'에서의 엄마와 딸의 대를 이은 짝사랑의 이야기와 아픔, 헤어짐 그러나 사랑의 이루어짐.
'바보'에서 '승룡'의 짝사랑,죽음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제 자리 찾음.
영화는 때로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리얼하게 그린다.
그리고 바보들의 이야기는 결코 바보들을 배반하지 않는다.
비록 아픔이 있고 외로움이, 고난이 있고 죽음도 있지만 그러나 그 결과는 회복이다.
사랑의 되찾음이다.
이민자들은 스스로의 삶이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외롭다고,힘들다고,죽겠다고 몸부림친다.
나도 더욱 그러하다.
그러기에 우린 바보가 되어야 한다.
자기 고향이 아닌 타향을 고향같이 사랑하며,
자기 가족이 아닌 타인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예수와 같은 바보가 되자.
그러면 우린 행복해질 수 있다.
나 그리고 우리 주위 모두가....
마지막으로 '고래 사냥'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삼등 삼등 완행 열차
기차를 타고.........'
이미 완행 열차는 폐기되었지만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있으니 역시 '바보'구나 라고 생각하시겠지요.
어쩌겠습니까?
전 바본데....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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