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트 글방

가을에 불러보는 노래 3

밴쿠버가제트 2009. 10. 28. 22:46
한바탕 가을 눈(雪)에 곤혹을 치룬 캘거리안들의 입에 날씨 이야기가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주렁주렁 달려있다.
차라리 편지나 쓰지.
외로운 여자에게 또는 헤메인 여자에게 아니면 모르는 여자에게...
그렇게 쓰고 지우고 다시 쓰던 편지를 더 이상 쓸 수 없음인가?
겨울로 변신했다가 다시 가을이 되어버린 철없는 계절의 장난에 흔들려 더 이상 연필이 손에 잡히지 않음인가?
노래로 대신 편지를 써보자.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최양숙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성악가답게 <가을 편지>를 세느강에 곱게 떠내려가는 노란 낙엽같은 목소리로, 쓰다만 편지를 대신 써주는 누이같은 세심한 마음으로 부른다.
그 이후 패티김,이동원,양희은,강인원,조관우,박효신,보아등 가창력과 감정 표현에 자신이 있다는 가수들은 이 노래의 리바이벌 대열에 참여한다.
그런만큼 노래는 각 가수들의 특징을 살린 색깔로 가을 바람을 타고 우리들 가슴을 토닥여 준다.
 
때로는 비어 있는 우체통을 바라보며 영화 <시월애>의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을,
또 때로는 흩어진 낙엽을 밟으며 <시몬 너는 아는가...>를 읊조리는 시인의 마른 입술을,
아니면 밤사이에 구겨진 편지지로 가득 담겨진 쓰레기통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화가의 퀭한 눈을,
보낼 곳이 없지만 그래도 이 가을에 어딘가에 편지를 쓰고싶은 우리들의 그 무엇을 대신한다.
그래서 작사가인 고은 시인은 '편지를 쓰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편지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가을이란 그런 것이다.
'가을'이라고 나즈막히 부르기만해도 나에게로 온 누님같은 국화꽃처럼
나의 무엇이 되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런 아름다운 여인들을 위해 '편지를 하는'......
 
그러나 그 누구보다 이 노래로 가을을 포근하게 만드는 가수는 이 노래의 작곡자이기도 한 김민기이다.
최양숙의 음반 작업에 작곡자로 참여한 김민기는 이 곡의 기타 반주를 맡으며 잘 어우러진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아무래도 <김민기 1집>에 수록된 <가을 편지>의 이병우씨의 클래식 반주에는 못미치는게 사실이다.
그런 이병우의 반주는 노을이 깔린 초가을의 골목길을 걷고 있는 트랜치 코트 신사의 묵직하지만 약간은 음산한 발걸음같은 김민기의 목소리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이런 것이 제대로 된 가을의 맛이다.
그런 가을의 맛을 들으며-YouTuve에 <가을 편지>가 제법 올라와 있으니 골라 들으시면 된다.-오늘 밤은 고국의 가을을 타고 있는 친구나 부모님 또는 옛 애인-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자-에게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이제 다음의 노래를 언급하지 않으면 안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무슨 명절이 된듯한 10월의 마지막 날에 반드시 들어줘야만 되는 노래.
이용의 <잊혀진 계절>.
뭘 잊어버렸는지 한 번 감상해 보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잊혀진 계절>은 내 취향의 노래는 아니지만 이 곡을 선곡한 건 10월의 마지막을 이 노래를 들으며 다같이 지내야만 되는것 아니냐는 일종의 의무감(?)이 많이 작용했다.  
그 보다 좀 재미있는 건 원래 가사는 9월인데 10월로 바뀐 사연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추려보면 1980년 9월의 어느날, 술에 약한 작사가인 박건호씨가 그동안 사귀던 여자에게 헤어지잔 말을 하려고 술을 겁없이 먹고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결국 '사랑해요'라는 말을 내던지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왔던 경험을 가사로 적은 것인데,앨범의 발매 시기가 10월로 늦춰지는 바람에 9월의 마지막 밤이 10월의 마지막 밤으로 둔갑되어 버린 참으로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이다.
우린 그렇게 변해 버린 밤에, 유독 10월에 슬픈 사연이 무지하게 많은 사람처럼 또는 10월에 헤어진것처럼 생각되는 남의 아내가 되어 버린 여자를 굳이, 일부러 생각해가며 목이 잠기도록 열심히 이 노래를 불러 제꼈으니 이것이 더 어처구니 없다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떠랴?
이젠 이조차도 하나의 가을 추억인것을....
그렇게 뒤바뀐 10월의 마지막 밤이 있기에, 다가오는 그 날 밤은 이제 오빠라 부르기엔 어색하지만 목소리만큼은 가을에 아주 잘 맞는 이용씨에게 감사하며, 그리고 술에 약한 박건호씨에게도 딱 한잔의 건배를 청하며 다 같이 불러보는 그런 음악 명절의 한 밤으로 만들면 어떨까...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