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가을 눈(雪)에 곤혹을 치룬 캘거리안들의 입에 날씨 이야기가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주렁주렁 달려있다.
차라리 편지나 쓰지.
차라리 편지나 쓰지.
외로운 여자에게 또는 헤메인 여자에게 아니면 모르는 여자에게...
그렇게 쓰고 지우고 다시 쓰던 편지를 더 이상 쓸 수 없음인가?
겨울로 변신했다가 다시 가을이 되어버린 철없는 계절의 장난에 흔들려 더 이상 연필이 손에 잡히지 않음인가?
노래로 대신 편지를 써보자.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최양숙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성악가답게 <가을 편지>를 세느강에 곱게 떠내려가는 노란 낙엽같은 목소리로, 쓰다만 편지를 대신 써주는 누이같은 세심한 마음으로 부른다.
그 이후 패티김,이동원,양희은,강인원,조관우,박효신,보아등 가창력과 감정 표현에 자신이 있다는 가수들은 이 노래의 리바이벌 대열에 참여한다.
그런만큼 노래는 각 가수들의 특징을 살린 색깔로 가을 바람을 타고 우리들 가슴을 토닥여 준다.
때로는 비어 있는 우체통을 바라보며 영화 <시월애>의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을,
또 때로는 흩어진 낙엽을 밟으며 <시몬 너는 아는가...>를 읊조리는 시인의 마른 입술을,
아니면 밤사이에 구겨진 편지지로 가득 담겨진 쓰레기통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화가의 퀭한 눈을,
보낼 곳이 없지만 그래도 이 가을에 어딘가에 편지를 쓰고싶은 우리들의 그 무엇을 대신한다.
그래서 작사가인 고은 시인은 '편지를 쓰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편지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가을이란 그런 것이다.
'가을'이라고 나즈막히 부르기만해도 나에게로 온 누님같은 국화꽃처럼
나의 무엇이 되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런 아름다운 여인들을 위해 '편지를 하는'......
그러나 그 누구보다 이 노래로 가을을 포근하게 만드는 가수는 이 노래의 작곡자이기도 한 김민기이다.
최양숙의 음반 작업에 작곡자로 참여한 김민기는 이 곡의 기타 반주를 맡으며 잘 어우러진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아무래도 <김민기 1집>에 수록된 <가을 편지>의 이병우씨의 클래식 반주에는 못미치는게 사실이다.
그런 이병우의 반주는 노을이 깔린 초가을의 골목길을 걷고 있는 트랜치 코트 신사의 묵직하지만 약간은 음산한 발걸음같은 김민기의 목소리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이런 것이 제대로 된 가을의 맛이다.
그런 가을의 맛을 들으며-YouTuve에 <가을 편지>가 제법 올라와 있으니 골라 들으시면 된다.-오늘 밤은 고국의 가을을 타고 있는 친구나 부모님 또는 옛 애인-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자-에게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이제 다음의 노래를 언급하지 않으면 안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무슨 명절이 된듯한 10월의 마지막 날에 반드시 들어줘야만 되는 노래.
이용의 <잊혀진 계절>.
뭘 잊어버렸는지 한 번 감상해 보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잊혀진 계절>은 내 취향의 노래는 아니지만 이 곡을 선곡한 건 10월의 마지막을 이 노래를 들으며 다같이 지내야만 되는것 아니냐는 일종의 의무감(?)이 많이 작용했다.
그 보다 좀 재미있는 건 원래 가사는 9월인데 10월로 바뀐 사연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추려보면 1980년 9월의 어느날, 술에 약한 작사가인 박건호씨가 그동안 사귀던 여자에게 헤어지잔 말을 하려고 술을 겁없이 먹고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결국 '사랑해요'라는 말을 내던지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왔던 경험을 가사로 적은 것인데,앨범의 발매 시기가 10월로 늦춰지는 바람에 9월의 마지막 밤이 10월의 마지막 밤으로 둔갑되어 버린 참으로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이다.
우린 그렇게 변해 버린 밤에, 유독 10월에 슬픈 사연이 무지하게 많은 사람처럼 또는 10월에 헤어진것처럼 생각되는 남의 아내가 되어 버린 여자를 굳이, 일부러 생각해가며 목이 잠기도록 열심히 이 노래를 불러 제꼈으니 이것이 더 어처구니 없다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떠랴?
이젠 이조차도 하나의 가을 추억인것을....
그렇게 뒤바뀐 10월의 마지막 밤이 있기에, 다가오는 그 날 밤은 이제 오빠라 부르기엔 어색하지만 목소리만큼은 가을에 아주 잘 맞는 이용씨에게 감사하며, 그리고 술에 약한 박건호씨에게도 딱 한잔의 건배를 청하며 다 같이 불러보는 그런 음악 명절의 한 밤으로 만들면 어떨까...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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