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의 삶이란게 어느정도는 퍽퍽하다.
더구나 캘거리처럼 푸석푸석한 날씨까지 도와주면 더할 나위없이 팍팍해져 온다.
자연스럽게 캐나다 포도청이 되어 버린 목구멍을 위해,
아니면 조선 반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지를 두고 있다는 긍지로 뭉친 조선인의 폼생폼사를 희멀건 피부를 가진 놈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치열하게 살다보면
물병 하나 없이 사막을 걷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이 때 필요한 물병이 끈적끈적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보따리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팍팍한 세상을 바보처럼 끈적끈적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얘기가 필요하단 말쌈이다.
그런데 내 삶의 주위에서 느꼈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면 공감하기가 어렵다.
내가 아는 끈적끈적한 사람을 멋진 문구로 표현하기도 어려울 뿐더러(그럴려면 머리를 쥐어 박으며 소설을 써야 하는데 그런 자학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런 삶을 산 당사자에 대해 보고 들은바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몇 줄 문장으로 그 공감을 이끌어 내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주 영화를 써먹는다.
사실 모르는 여자와의 첫 데이트 때도 말 문이 막히거나 하면 곧잘 써먹던것이 그 때 당시 유행하던 영화 아니었던가.
영화는 사막에서 건진 물병같은 끈적끈적한 바보들의 이야기다.
내가 생각해도 멋있는 문구다.
멋있는 문구들이 범람-쓰나미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만-하는 요즘엔 딴에 무슨 멋있는 생각이 떠올라 메모를 해놓고 보면 꼭 누군가가 비슷한 것을 이미 말하지 않았나 의심이 들어 혹시나 비스므리한 말을 한 놈이 있는가싶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직까지는 없는것 같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영화(컴퓨터 그래픽으로 도배를 하거나, 피가 난무하는 쓰레기같은 영화 말고)는 바보들의 이야기다.
아무리 잘난체를 해도 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거품을 무는 친구들은 그래서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바보들은 어찌되었던 자기 얘기를 좋아하는 법이니까.
그런 바보들의 이야기 중에 정말 끈적끈적한-자주 쓰니까 내 손이 끈적거리는 것 같아 그만 써야겠다-바보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자세히 읽으면 그 바보들의 공통점이 나오는데 알아채면 고맙겠다.
70년대 바보들은 정말 제대로 된 바보들이었다.
당당히 자신들의 별명을 넣은 영화를 만들고 처음으로 세상에 내어 놓았으니 말이다.
똑똑이들도 잔득 움츠렸던 시기인 1975년에 자신들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만든 바보들은 여자에게 채이고, 빤쓰만 입은 채 스트리킹도 하고, 좌충우돌하며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처럼 쓸쓸히 퇴장하려 하지만 그러나 통쾌하게 역전승하는 모습을 마지막 장면에서 후배 바보들에게 남긴다.
꽤많고 똑똑한 '영자'는 입영 열차를 타고 가는 바보 '병태'에게 그것도 군발이의 도움을 받아서 결사적으로 입술을 건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키스 장면을 화면 가득히 채운다.
그 장면에서 우리 바보들은 얼마나 애가 탔던가?
미국의 쓰레기같은 영화에서 지겨울정도로 많이 보아 온 이 쪽 저 쪽에서 쪽소리나며 입술 부르트도록 빨아 재끼는 그런 키스말고
달듯 말듯하며 애절하게 부딪치는,아 그래서 더 가슴 졸이며 입맛 다시게 만드는 이 장면에서 우리의 70년대 바보들은 열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바보성은 암울한 시대에 대한 청춘의 고민을 반항적이기 보다 해학적으로 그린것이다.
물론 '영철'의 자살이란 어두운 사건이 있긴 하지만 입영열차를 타고 가는 '병태'와 기어코 키스하는 '영자'의 모습에서 70년대 바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80년대로 넘어오면서 '고래 사냥'으로 연결된다.
물론 소설이 나온 시기는 70년대이지만 우리의 '바보'들은 따분한 책보다 역시 영화에 더 몰입한다.
그리고 이제 바보들은 똑똑이를 친구로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젠 바보 이름의 대명사가 된 '병태'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딱지를 맞지만 비슷한 바보인 '춘자'와 동행한다.
오히려 '춘자'의 삶이 더 끈끈하고 더 따끈따끈하다.
여기에 '바보 안성기'가 바보들의 형용사로도 쓰이는 '거지'로 등장한다.
영화에서건 현실에서건 이 바보는 내가 존경하는 바보다.
아무튼 '고래 사냥'에서 드디어 바보들의 특기인 로드무비에 걸맞는 틀을 가지게 되었다.
80년대엔 바보와 바보가 고래 잡으러 동행을 하게 되고, 바보들의 전성기가 되어버렸다.
사회는 '보통 사람'으로 표절 당했고 점령당했지만 우리의 바보들은 '자, 고래잡으러' 이륙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2편에서는 고래 잡는 바보들과 그 이후의 바보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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