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이 노래를 눈물,콧물 흘리며 불러 본 사람도 있을 것이며, 군중 속에서 친구들이 부르니 따라 불렀던 사람도 있을 것이요 아니면 이 노래를 들으면 온 몸에서 두드러기가 나고 윗 이빨과 아랫 이빨이 자동으로 격하게 만나면서 부드득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으리라.
마지막 예는 훈련소에서 자대 배치를 받자 마자 만난 순경(전투경찰의 경우에는 순경이 하사관의 임무를 본다)의 경우이다.
그 순경이 자대 배치를 방금 받은 나를 비롯한 새파란 쫄병들에게 님을 위한 행진곡을 아냐고 물었는데, 군기가 바짝 든 상태에서 “네”라고 서슴없이 대답했다가 나의 좌측 갈비뼈와 순경의 우측 군화발이 두 세 차례 거칠게 충돌한 후 거의 기절해 있는 나에게 다시는 안다고 얘기하지 말라는 자상한 목소리를 희미하게 들려주고는, 밤이 되어서는 술을 거나하게 먹으면서 나를 때린 이유를 눈물이 앞을 가리도록(?) 감동적이게 설명한 이후로 난 그런 사람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유인 즉 어린 나이에 군대를 지원했는데 데모하는 학생들 때문에 무지 고생했기 때문에 데모했다는 놈들을 만나면 피가 꺼꾸로 솟아서 팬다는 아주 단순한 것이어서 오히려 공감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 노래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요즘 이 노래가 줄기차게 생각나는 이유는 사실 그 가사 때문이다
그 가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린 노래로서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1980년 12월)에서 가사를 따와 광주지역 문화운동가인 김종률씨가 작곡을 하였고 여기에 맞춰 황석영씨가 개사하였다.
이 노래는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도청에서 전사한 윤상원과 1979년 겨울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 '넋풀이'에서 영혼 결혼을 하는 두 남녀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발표되었다. 그 뒤, 1982년에 제작된 음반<넋풀이-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위키 백과 참고)
젊었을 때에야 그 끊는 피때문에라도 ‘혁명’이니 ‘개혁’이니 하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후끈거리는데 하물며 ‘뜨거운 맹세’며 ‘산 자여 따르라’고 주문하는 그 부름에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식어져가는(?) 피 덕분에 노래를 불러도 별 반응이 없지만 요즘 오히려 가사에 더 마음이 와 닿는 이유는 그렇게 목이 터져라고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라고 외치며 달려 나갔던 친구와 동료들 대부분이 ‘뜨거운 맹세’ 와 ‘앞서서 나가자’는 남김없이 다 버리고 그 ‘사랑’과 ‘명예’와 ‘이름’에 아둥바둥거리며 사는 모습이 웬지 쓸쓸해 보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군대에서 만났던 그 순경처럼 단순하게 패는 입장이었다면 모르겠으나 젊은 피와 열정을 ‘자유’와 ‘정의’를 위해 몸부림 쳤던 그 때 그 사람들이 이젠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명예’에 정열을 남김없이 쏟아 붇고 있는 모습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결국 이렇게 되는건가?
이제와서 무엇인가를 남기기 위해 그 때의 그 뜨거운 맹세를 최루가스처럼 흩날려도 되는것인가?
나이가 들면 명예에 대해 보다 관심이 많아진다고 한다.
또 50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사랑도 20대에 느꼈던 것과 다르다는 느낌을 갖는다.
좀 식어진 반면에 더 넓어졌다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건 아니지만 다른 성(性)에 품었던 감정보다 사랑 그 자체에 더 다가섰다는 표현이 어울린다고나 할까…
이젠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 또한 이상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낸지도 꽤 되지만 아직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 아픈 마음이 모처럼 아침 일찍 일어난 지금 다시 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路祭)에서 연주되었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털어 버렸던 그 때의 그 자유함이 무척 그리워서 다시 한 번 모든 것 털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동지들이여!
이제 다시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정한 진리와 자유를 위하여 ‘나’를 ‘남김없이’ 털어 버리는 건 어떨까하며 조용히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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