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목자라> 중에서
P 119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신부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하루는 친구와 함께 독일제 소형차인
폴크스바겐을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답니다.
갑자기 자동차 뒤쪽에서 쾅ㄹ하는 폭음이 일어남과 동시에 자동차가 총알처럼 튕겨 나갔습니다.
교통사고였습니다.
순강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죽었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자동차의 뒤쪽은 이미 날아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신부님의 차 앞으로 번쩍번쩍하는 벤츠가 다가와 섰습니다.
신부님의 차를 들이받은 차였습니다.
얼른 보아도 그 벤트는 말짱해 보였습니다.
받친 차는 반이나 부서졌는데도 정작 사고를 낸 벤츠는 흠집 하나 없음을 보고,
말로만 듣던 벤츠의 견고함에 새삼 놀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부님을 정작 놀라게 한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멈춘 벤츠에서 잘 차려입은 신사가 내렸습니다.
사고를 낸 장본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신부님의 자동차를 반파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신부님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피해 차량 운전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신부님을 찾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차 앞에서 허리를 굽혀 손으로 차를 이리 저리 만져보며
자기 벤츠의 이상 유무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잘못으로 인해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생명엔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 자동차를 더 귀하게 여기는 그의 행동을 보면서
신부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피해자인 신부님이나,가해자인 그 자기 중심적 독일 신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대체 어떤 인물이라 스스로 평가하고 있습니까?
입으로는 사랑과 박애주의를 소리쳐 외치면서도,
암으로 죽어가는 이웃집 사람보다 밤사이에 긁힌 자신의 자동차로 인해 더 속상해 하는
이기주의자,물질 숭배자인 것은 아닙니까?
저 자신을 비롯하여 우리 가운데에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있습니까?
이웃집 사람보다 내 자동차를 애지중지하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라면,우리는 우리의 실상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온화한 미소와 친절한 말씨로 다가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상대의 존재를 실은 나의 자동차보다 못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숨길 수 없는 우리의 적나라한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죽일 뻔하고서도 자기 자동차를 먼저 살펴보는 그 독일 신사가
이웃을 향한 우리 자신의 이기적 모습이라면,
자동차보다도 가지 없는 존재로 반파된 차안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 신부님은
이웃으로부터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보잘것없는 우리 자신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나 자신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세상을 향한 나 자신,
세상으로부터의 나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아무리 고매한 인격의 옷을 입고 더없이 높은 이상의 띠를 두르고 있다 할지라도,
이 세상 속의 인간은 실은 자동차 한 대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 뜬 자만이 이 세상을 초월하여 비로소 영원한 가치,영원한 의미,
영원한 생명에 자기를 맡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아는 것은 더없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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