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트 자작 시

한 해를 보내며

밴쿠버가제트 2016. 1. 2. 07:09

 해를 보내며

 

겨울 햇살을 토막  오후는 무덤덤하게 껌뻑 거리고

어둡기 전까지 흔들리던 시간이 빨간 신호등 아래 정지해 버립니다.

다른 길에 양보하란 신호지만

잠시 멈추란 거지요.

멈추어서 옆도 보고 뒤도 보고 그리고 나를 보라는 거지요.

 

검은  수북한 도로 옆으로 무심한 눈길 돌릴 

누추한 낡은 십자가 하나 들어옵니다.

어릴  시골 교회  바랜 벽에서 본듯한,

자세히 바라보면 끝부분에 작은 구멍이  있는

늙은 십자가 그림자,

 그림자에 겹쳐집니다.

 

 때도 조그만 나를 불렀던  십자가.

먼저 나를 찾았고

나를 사랑했고

나를 안아줬지만

장식처럼 달고 다니다

빨간 신호등 불빛 아래서 겨우 알아  나는

급하게 그림자를 벗어 던지고 총총히 가던 길을 갑니다.

 

죽는 날까지 부끄러운 얼굴

외투 깃에 파묻고 가는 길은

바람 같은 12월의 끝자락에서 초라하게 나부끼고 있습니다.

 

버려져야 마땅  몸, 십자가로 사신 당신을 버리고  저녁은 눈물 나게 화목합니다.

 

십자가가 찾아  몸이 돌아  곳은

 십자가 묻혀 있는 검은  더미

 

덮고 있던 검은  쓸어 버리고

뚫어진 작은 구멍에 손가락 넣어 바람 막아 주는 그 때

비로서 돌아오는  사랑  모습

무릎 꿇은 후

'다시 사랑할께요'

부끄러운 입술 위로 

새해의 밝은  따뜻하게 서려오고

십자가를  안은   위엔

파란 신호등  넓게 퍼져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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